조선잡사 읽고

조선잡사
강문종, 김동건, 장유승, 홍현성 지음
민음사

요즘 사극 일을 도와주다 보니 조선시대에 관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역사 이야기도 어떤 건 재밌고, 어떤 건 재미없는데 이 책은 꽤 재밌는 편에 속한다. 처음 몇 장만 읽어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끊지 못하고 가방에 넣고 다녔을 정도다.
4명의 학자들이 자기들 연구하면서 틈틈이 조선의 직업들에 관한 부분을 모아두었다가 언젠가 책을 내자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던 중 신문연재 칼럼을 잡아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칼럼 일을 잡아오신 분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와서 약간 놀랐다.
어쨌든 역사학자들이 쓰다보니까 상상력으로 오버하는 이야기들보다 훨씬 신뢰가 간다. 그런 중에도 너무 학문적이지 않게 대중적으로 쓴 글이라 재미도 있다.

혼례도우미인 수모는 요즘으로 치면 웨딩플래너에 스타일리스트에 주례 겸업이라 수모를 비싼 돈 주고 멀리서 데려와서 쓰기도 했다고 한다. 가체는 여자들이 쓰지만 가체장은 남자들이었다. 이 책에 가체가 나오는데, 생각보다 무서웠다. ^^;; 가체의 머리카락도 대부분 남자 머리라 그 털을 참하게 잠재우려면 화학적으로 처리를 해야 했다고 한다. 가체를 쓴 신부가 시아버지의 방문에 놀라 일어서다가 목이 부러져 죽은 이야기도 나왔다. 으으. 채소는 예전에도 비싼 편이었던 것이 땅이 있으면 대체로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채소 농사를 거의 짓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들이 밭농사를 지었고, 그래서 시전 상인 중 채소상은 여성이었다고. 사형집행자를 망나니라고 하는 것까지는 알았는데, 전옥서에서는 형형쇄장이라고 해서 사형수나 중죄인에게 사형집행을 맡겼다고 한다. 즉, 사형수가 사형수의 목을 잘랐단 이야기다. @.@ 물을 건네주는 월천꾼이라는 직업도 있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을 나르기도 했다고 한다. 심마니는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도 조심해야 했지만, 같은 심마니도 조심해야 했다고. 산삼을 뺏고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매골승은 죽은 시체를 묻어주는 승려이다. 역병이 창궐하거나 전쟁이 나면 임자없는 시체들을 이 분들이 묻어주었다고 한다. 전기수 중에는 너무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과몰입한 관객이 전기수를 찔러 죽이기도 했단다. 정말 극한직업이다. 전우치가 마술사였다는 이야기도 신선했고, 박물관에서 청동거울을 볼 때마다 저걸 어떻게 본단 말인가 했는데, 마경장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거울을 닦아주는 직업이다. 유리거울이 나오기 전에는 꽤 많은 사람이 종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붓과 활을 만드는데는 엄청난 재주가 있었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그러다보니 점점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는 게 많아지고, 세금처럼 부과되고, 그러다보니 만들다 만들다 도망갔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이뿐 아니라 정말 많은 직업들이 전문직임에도 나라에서 점점 더 많은 세금(만들어야 할 물건)을 부과하는 바람에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때마다 혀를 쯧쯧 차며 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재주있고 일 잘하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점점 많은 일을 하게 되니 세상이란...
나무꾼은 의외로 하루에 한짐 정도만 하면 되는 직업이라 여유가 있었고, 선비들도 천하게 여기지 않은 직업이라고 한다. 또한 맹인을 악공이나 판수(점보는 직업)로 키우고 대접해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박연이 관현맹이었다니 처음 안 사실이다. 대립군이니 매품팔이를 보면 군역이며 벌이며 대신해주는 고달픈 직업은 그 때도 있었고, 과거시험과 관련된 수많은 직업을 보면서 과연 과거시험에 자신의 능력만으로 급제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어이가 없어졌다. 과거 시험에는 몸싸움해서 대신 자리 맡아주는 사람, 책이나 컨닝할 자료를 몰래 감추고 들어가주는 사람,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 등 수많은 직업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 대입시가 훨씬 공정한 것 같기도 하다. 호랑이를 잡는 부대, 매를 길들여 꿩을 사냥하는 사냥꾼, 원숭이를 재주넘게 하는 사람 등의 직업을 보면 지금은 사라진 옛 동물들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웠나 싶기도 하다.
사극 등을 통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직업들도 내가 모르는 면이 많았고, 모르는 직업들도 많았고,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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