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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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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 한겨레출판

간도에 사는 강주룡은 스무살 때 다섯살 어린 전빈에게 시집간다. 혼인날 처음 본 신랑이지만 잘 생기고 다정해서 둘은 금슬이 좋았다. 이런 신랑이 내게 올리 없다 싶었더니 전빈이 독립군에 가담하려는 걸 알고 시집에서 얼른 아무에게나 장가보내버린 거였다. 결국 전빈과 주룡은 독립군에 가담하고, 아녀자인 주룡은 허구헌날 밥짓고 빨래하다 어느 날, 임산부를 가장해 배에 총기를 운반하는 임무를 완수한다. 이로써 독립군 대장인 백광운의 눈에 든다. 그러나 그 일로 부부 사이에는 금이 가고, 결국 주룡은 가버리라는 전빈의 말에 홀홀단신 친정집으로 돌아온다. 1년 후 전빈은 산송장이 되어 돌아오고, 주룡의 간호에도 죽음을 맞이한다. 시집에선 주룡이 전빈을 죽였다며 고소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고, 겨우 풀려났더니 친정집에선 주룡을 나이 육십 넘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 하는데....

줄거리를 쓰다 보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진다. 저렇게 정리된 줄거리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개와 사랑스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건 이다혜 기자 덕분이다. 한겨레문학상을 탄 작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표지만 보고 조선시대 여인 이야기인가 했다가 한국 최초의 고공 농성자 이야기라기에 그게 뭐 재밌을까 싶었다. 근데 이다혜 기자가 SNS에선가 <출근길의 주문>에선가 재밌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뒷표지에 심사위원들의 추천사가 나와있는데 죄다 주인공 강주룡 캐릭터의 매력에 대해서 써놓았고, 나 역시 읽으면서 주룡이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이렇게 멋진,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니! 추천사 중에 '도식화의 유혹을 이기고 역사 속의 인물을 상상하는 소설적 힘이 대단하다'는 말이 있는데, 진정 그렇다. 전형적인 편견으로 상상한 어떤 것도 다 틀린다. 주룡이 앞에 오면.
강주룡이 제일 멋지지만, 남편 전빈이나 독립군 대장 백광운, 엘리트이자 공산당인 정달헌 등 여기 나오는 남자들도 다 멋있다. 언제나 남자 캐릭터를 찌질하게 쓰는 나로서는 부러운 부분이었다. 나도 요즘 1930년대 이야기를 쓰고 있어서 더욱 이 소설이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배운 바가 많다. 조선희의 <세 여자>를 읽을 때는 이게 소설이야 기사야 르뽀야 이게 뭐야 했는데 <체공녀 강주룡>을 읽으면서는 나도 이만큼 인물과 시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 부럽고 걱정이 된다. 나는 특히 옥이와 주룡이의 관계가 잊히지 않는데, 아래 심윤경의 추천글처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생각이 났다. 들었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옮기고, 그게 뽀록났을 때 미안해서 눈도 못마주치는 그런 관계에 대해서 나는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번 정도 울컥해서 눈물이 났고, 마지막 줄의 '저기 사람이 있다'에서 세번째 아니 울 도리가 없었다. 
우리에겐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도 필요하지만 <체공녀 강주룡> 같은 선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면 재밌겠다 싶다가도 어떤 영화가 이 소설에 나오는 주룡이의 생생함을 전달할 수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이 책에 표현되는 강주룡의 생생함을 전달할 수가 없다. 그저 읽어보라는 말 밖엔.

심윤경의 추천사를 베껴둔다. 내 마음 그대로다.
내가 이 소설을 편애한 기준은 단순하다. 소설을 읽다가 그 속의 인물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럼 볼 것도 없이 잘 쓴 소설이다. 소설 속 주룡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 친구 같은 느낌을 주었다. 투박하고 단순한 언어와 외모, 내내 화평하다가도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는 성미, 그 속에 감춰진 풍성하고 화사한 감성,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볼 수 있는 히쭉 웃음까지. 중학교쯤 되는 어느 시절 죽고 못 살던 단짝 친구를 무심코 펼친 원고 속에서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조선 최초 고공 농성자라는 주룡의 역사적 가치보다도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온 건 그런 거였다. 소설 속 인물과 나 사이에 오래된 영혼의 교류가 존재한다는 느낌. 내가 한때 추구했으나 이제는 그 기억조차 빛바래버린 어떤 욕망을 소설 속 인물이 싱싱하게 구현하고 있을 때, 나 또한 그와 함께 몸속에 생생한 것이 다시 날뛰게 되었다고 고마워하게 되는 그런 기분 말이다.


밑줄긋기
29 _ 혼인이란 것은, 부부가 된다는 것은 동무를 갖는 일이구나. 죽어도 날 따돌리지 않을 동무 하나가 내게 생긴 것이구나.
32 _ 뿌리가 중한가. 저 이완용이는 쌍것의 씨를 타구나서 나라를 팔았다던? 나라에서도 중신 중의 중신이 아니었나. 양반님, 귀족님네나 되어서 나라를 팔았지 않았네.
39 _ 사람이 응당 품어야 할 바른 마음, 이를테면 정의감이나 애국심 같은 것은 모종의 적개심을 뿌리 삼기도 한다는 것을 주룡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74 _ 부대의 사기는 사상자가 발생할 때보다 도주자가 나올 때 더욱 떨어졌다.
127 _ 네가 한마디 하면 네 말고 기 옆 사람을 팬단다. 다른 직공들이 네를 미워하게 하려구.
140 _ 구남성의 박해를 받았으니 이는 도리어 모단 껄 되기의 제일보에 진입한 것이다.
172 _ 지참금 조로 친정에 돈을 제법 쥐여주었다 하여서 내가 그래도 형편이 좀 괜찮은 집구석으로 가는구나, 안심했던 삼이는 혼인을 치르고서야 그 돈이 이 집의 마지막 믿을 구석이었음을 알았다. 소 한 마리 살 돈보다 헐한 값을 가지고 저를 산 것이다. 새끼도 치고 일도 해줄 소 비슷한 것을.
182 _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 자본가여 먹지도 말라
194 _ 차마 동지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이가 나와 같은 대오에 속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주룡은 배운 적이 없다. 달려가서 뒤통수를 때리고 감히 네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나오느냐고 따지고 싶은 동시에 한편으로는 저 사람도 노동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을 느꼈다.
204 _ 그런 욕을 할 줄 안다는 것은 그런 욕을 들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욕설은 듣는 쪽보다 하는 쪽의 품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205 _ 혼자 있을 때 주룡은 그 자리에 있기는 하나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흙먼지 같은 것이다. 흙먼지는 흰 빨래 같은 데에 앉아야 비로소 눈에 띈다. 보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216 _ 세상에 싸우기 좋아하는 이가 있답데까? 싸우구 싶다는 거이 순 거짓입네다. 싸움이 좋은 거이 아이라 이기구 싶은 거입네다.
217 _ 주룡 씨. 사람은 소진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끼시오. 아껴야 제때에, 쓸 곳에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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