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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란 무엇인가? : 2인극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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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원작 | 조안나 틴시 각색 
박소영 연출 | 백은혜, 홍우진 출연
2020. 11. 18. 예스24스테이지 3관

<며느라기>에서 사이다 형님인 혜린 역의 배우 백은혜 씨가 연극 <오만과 편견>에 출연한다고 했다.
8월에 대본 리딩 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꼭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11월이 되어서야 보러 가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읽어보지 않았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영화를 보긴 했다. 솔직히 재밌지는 않았다. <오만과 편견>은 말괄량이 둘째딸이 까칠한 남자를 만나 서로 오해하다가 결국 사랑에 골인한다는, 수많은 로코물의 원조 같은 작품인데 그간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러 방식으로 변주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낡을대로 낡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연극을 2인극으로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예상한 것은 '여기 나오는 몇몇 남녀 커플을 남자배우와 여자배우가 각각 연기하겠지' 정도였다. 그 정도만 예상하고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15명의 등장인물을 단 둘이서 소화
남녀 커플을 연기할뿐만 아니라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을 단 두 사람이 연기한다. 여기 나오는 인물이 얼마나 많냐면, 부모와 삼촌내외, 캐서린 부인 등 어른들만 5명, 거기에 딸이 5명, 그 각각의 남자들 4명, 그에 수반되는 여동생이라든가 하녀라든가, 친구라든가. 그러니까 최소한 15명 이상의 인물을 이 두 사람이 다 소화해낸다. 어떻게?? 잘!!!!!
시작부터 사로잡혀서 꼼짝없이 감탄에 감탄을 하며 봤다. 처음에는 이 연기는 누구를 가리키는 건가 외우느라 엄청 집중해서 봤는데, 보다보면 내가 굳이 그걸 외우지 않아도 배우들이 너무나 잘하기 때문에 이건 리지, 이건 캐롤라인, 이건 리디아라는 게 그냥 딱딱 무의식적으로 구분이 된다. 특히 주인공 리지와 언니 제인은 대화를 자주 하고, 빙리씨와 다아시는 친구라 맨날 같이 다니기 때문에 여여, 남남커플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래서 백은혜 배우와 홍우진 배우는 때로 여자가 되었다가 때로 남자가 되는 등 성별도 왔다갔다 한다.
그들이 배역을 넘나들 때마다 지팡이, 손수건, 부채, 숄, 모자 등의 소품이 바뀌기도 하지만, 목소리와 톤도 바뀌고, 몸짓과 주변의 공기까지 바꿔버리기 때문에 75분(1막)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를 '팔색조'라고 하는데, 진짜 이들이야말로 팔색조가 아닌가 싶다. 특히 이들이 키티와 리디아가 자매가 되어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돌연 무대에 활기가 넘치고 객석에선 웃음보가 터진다. 이 딸들의 부모인 미시즈 베넷과 미스터 베넷의 티키타카도 좋아서 이들이 나올 때도 종종 웃긴다. "그만 해!" ㅋㅋㅋ

책 읽어주는 연극 
그리고 이 연극은 책을 읽어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배우들이 자신들의 대사를 할뿐만 아니라 때로는 지문을 그대로 읽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아시에게 이 길이 자신의 산책길이라고 했건만 다아시는 그 이후로도 세번이나 그 길에서 마주쳐야했습니다"라고 지문 읊듯 설명을 하며 산책길에서 만나는 장면을 재현한다든지, 둘이 한참 쳐다보다가 "긴 침묵"이라고 소리내어 부연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런 부분들에 빵 터지기도 하고, 싹 정리가 되어 넘어가기도 하니 아이디어가 쌈빡하고 좋았다. 
그래서 누가 이런 아이디어로 극을 썼는지 찾아봤더니 2014년에 영국에서 배우이자 극작가였던 조안나 틴시가 각색해서 초연했다고 한다. 역시...배우였던 사람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쓰다가도 이렇게 많은 배역을, 이렇게 길게 두 사람만 연기할 수는 없다고 지레짐작하며 포기했을 게 분명하다.
만약 이 연극을 정극으로 봤다면 얼마나 지루했을까? 모든 배우가 1인 1역을 하고,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을 지루한 대화로 채워서 보여줬다면, 나는 반드시(어쩐지 분명히보다 반드시를 쓰고 싶은 기분) 객석에서 졸고 있었을 것이다. '2인으로 끌고 간다'는 제약이 이토록 극을 활기 넘치게 하다니!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그 아이디어도, 아이디어를 실현해 낼 수 있었던 배우들의 역량도 너무나 대단했다. 1막 75분, 2막 60분을 온통 대사와 지문으로, 즉 배우들의 말로 채우는 극인데, 그 오랜 시간 동안 쏟아지는 대사를 모두 외우고, 그 각각 다른 역할에 맞춰 외우고, 소품을 적재적소에 꺼내들며, 춤까지 춰야했던 배우들. 이들이 과연 사람인가 싶었다. 사람이 아니여....신이여.....
그래서 연극이 끝나고 나올 때쯤 나는 그 어마어마한 배우가 나의 드라마에 출연해주셔서 감사한 정도가 아니라 황송한 지경이 되었다. 
아...정말 대단했어. 배우란 무엇인가? 배우란 이런 존재인가? 새삼 깨닫게 된 놀라운 연극이었다.
아하하하~ 머리카락을 꼬며 웃으며 뛰어다니는 리디아와 키티로 빙의한 배우들.
다아시와 리지로 멀쩡할 때의 배우들
제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P.S _ 연극 잘 봤다고 인사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대기실에서 배우를 만나는 게 금지되어 있다고 해서 못 보고 나왔다.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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